핵심교양

[핵심교양] 영동선에서 만난 사람2

작성자 교무처 작성일 2015.12.29. 10: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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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선탄장이 산처럼 드리워진 철암역(鐵岩驛)은 태백 지역의 무연탄을 전국 각지로 보내던 역이다. 한창일 땐 300여 명이 근무했을 정도로 매우 큰 역이었지만 석탄 산업의 쇠퇴로 많은 사람이 떠나가게 된 지금은 조용하다 못해 스산하기까지 하다. 지난 영광스러운 모습은 이제 까마득한 옛날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렸다.

꽃피는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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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를 거닐다가 입춘대길(立春大吉)이 쓰여 있는 한 현관문을 보고 발길을 멈췄다. 아직 겨울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데 벌써 입춘대길을 붙여 놓은 이유는 뭘까. 벌써 봄을 기다리는, 이곳에 사는 어르신은 어떤 분일까. 살짝 열려있는 현관문 사이로 할아버지 두 분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입춘대길을 보고 왔다고 하니 절에서 받은 거라며 허허 웃음 짓던 할아버지께서는 낯선 우리에게 경계의 낯빛 대신 들어오라는 따뜻한 한마디로 응해 주셨다. 지난 세월, 탄광에서 일하며 40여 년 간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할아버지는 홀로 이 겨울을 나고 계셨다.

할아버지 여기 2, 3층에 사람들이 살고 있나요?
그렇지. 201호부터 215호까지 15집, 301호부터 315호까지 15집. 30가구 되지. 이게 원래 1세대당 가게를 내줬어. 장사하라고. 시에서 분할해 준 거거든. 그런데 인제 탄광이 폐광이 되가지고 사람들도 다 가 뿌리고 그래서 가게가 다 비어뿐 거지.

지금은 30가구가 다 살지 않는 거죠?
응, 그렇지. 2층에는 다 있는데 3층엔 몇 가구 없어요. 다 떠나가고 인구가 없으니까 장사도 안되지. 그러니 다 제 살길 찾아 떠난 거지. 뒤에는 가게가 하나도 없고, 그래도 앞 가게는 몇 가게 좀 있어요.

집이 생각보다 커요, 할아버지. 그때 당시 엄청 인기 있었을 것 같은데 어땠어요? 
석공 아파트라고 해서 거기랑 여기랑 아마 같이 지었을 거예요. 거기는 인자 석탄공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들어갔던 데고 이거는 인제 시청에서 여기서 장사하고 먹고살라고 지은 거고. 여기가요. 황지(현재 태백의 번화가)도 여길 못 따라갔어요. 지금은 시청 소재지잖아요..

할아버지께서는 여기서 사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나는 한 여기에 40년 살았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여든.

정말 젊은 시절 여기서 다 보내신 거네요.   
그런 셈이지.

할아버지는 원래 여기 분이신 거예요?   
아니, 나는 충북 단양. 돌아 돌아 오다 보니까 마지막에 여기로 왔네.

탄광 산업이 한창일 때 오신 거예요?   
이 탄광이 6,25 전쟁 일어나가지고 생긴 거거든. 난 그때는 동해에서 살았고. 군대 갔다 오니까 할 일도 없고 부모가 못 살아가지고 재산 물려 받은 것도 없고. 탄광에서 일을 하다가 병에 걸린 거지. 진폐증 걸리니까 농사 지으려고 했는데 농사도 짓다가 자금이 없어서 안돼, 그래서 농사도 못 짓고, 고향도 못 가고 여기서 살고 있는 거지.

진폐증은 탄광생활 때문에 얻으신 거예요?
그렇지. 그 병은 불치병이래. 못 고치는 병이래. 폐에 탄가루가 다 들어갔으니까.

탄광에서 얼마나 일하셨어요? 
탄광에서 한 30년 했습니다. 지금 그래서 진폐에 걸려 가지고. 기침도 나고, 숨도 차고 목에서 가래도 올라오고. 어디 갈 데도 없고 나가지 못해서 살고 있는 거지. 여기 뭐 다들 진폐 환자들이지, 뭐.

우리나라의 산업 역군이셨네요. 
나라가 어려울 때 우리가 산업 역군으로 불렸었지. 나라를 키운 이들이지. 그래도 그걸 나라에서 인정해줘서 진폐증을 법제화 했는데 그것도 급수가 있어 가지고…

급수가 있어요? 
13급부터 1급까지. 제일 말단 급수가 13급이고 1급은 죽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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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분들이 많죠?
많죠. 여기 달력도 진폐협회에서 준거예요.

할아버지께서 일하셨을 때만 하더라도 탄광이 잘 됐어요?
아유, 아주 잘 됐죠. 그러니까 할 수 없이 탄광에서 벌어먹어야 했지. 결국 고향도 못 가고 돈도 못 벌고.

왜 못 버셨어요?
그때만 해도 가족이 많았거든. 부모님 있었지, 식구 있지, 동생 있지, 애들 있지. 다 책임지고 살다 보니까 돈이 안 모여. 돈도 못 벌고, 몸만 아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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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할아버지 생각보다 집이 무척 따뜻해요.   
연탄 때놨으니께.

연탄을 어디서 때우세요?
저기 뒤에 보일러실이 있거든요.

연탄 보일러 처음 봐요. 할아버지.   
처음 봐요?

기름 보일러는 안 쓰시는 거예요?
저거 연탄 하나에 500원인가 해요. 기름 보일러는 비싸잖아요. 요새는 기름값 내렸다는데 그래도 비싸지. 그리고 바로 앞에서 연탄이 아직까지 나니까. 이 집을 지을 때 연탄 보일러랑 기름 보일러를 다 해놨거든. 그래서 기름 때는 집도 몇 집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연탄이지.

불편한 건 없으세요?
가스는 다 배출이 되니까. 막 연탄 가스 때문에 죽었다는 사람들 나오는데 그건 연탄 가스가 배출이 되지 못하니까 그런 거고 여기는 다 배출 잘 되도록 해놨어요. 그런데 연탄 보일러가 삼방이거든, 삼방. 3개를 한꺼번에 태워요. 하루에 한 두 번씩 갈아줘야 하긴 하지.

이 지역 흥했을 시절,가끔 생각나세요?
그렇지. 황지 쪽에도 일체가 탄광이었고, 장성도 탄광이었고. 황지가면 그 어디냐 고개 넘어가면 광업소가 있었지. 전부 탄광세상이었어. 그런데 석탄이 자꾸 없어지니까 문닫고, 문닫고. 그리고 다들 없어지고 여기 남은 거는 석탄공사 하나인 거지.

사시는 분들은 다들 연세가…
거의 다 80 다됐죠. 여기서 뭘 벌어먹고 살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까. 뭐 벌게 있어야지. 그러니까 나갈 수밖에 없는 거고. 그러니까 늙은 사람들만 남은 거지. 늙고 병든 사람.

할아버지는 떠날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힘이 없지. 갈 능력이 안 되는 거지. 신식인데 가려고 해도 관리비만 해도 20만 원 나온다는데 여기는 관리비가 없어. 전체 생활비가 20만 원도 안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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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집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쌓여있는 연탄과 집안 가득히 퍼져 있는 따뜻한 온기 덕분에 이 추운 겨울을 잘 보내시고 계신 것 같아 조금이나마 안도했다. 지난 세월, 그것이 청춘인지 모르고 일 만하다 지나간 세월을 더듬던 할아버지는 담담하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여러 길을 돌고 돌아 결국 광부의 삶을 살수 밖에 없었던 할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여쭤본 질문마다 할아버지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훨씬 많이 풀어주셨다. 우리가 아닌 스스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되뇌는 것처럼 말이다. 입춘대길을 보고 들어왔다는 우리의 말에 말없이 허허 웃으셨지만, 할아버지도 어여 빨리 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기를 바라시는 듯 활짝 웃어 보이신다. 어여 봄이 왔으면 좋겠다. 연탄을 태워야 하는 할아버지의 수고도 덜고, 얼었던 빙판길도 녹아 할아버지가 동네 산책도 다닐 수 있는 그런 봄 말이다. 따뜻한 햇살이 집안 가득 비출 수 있는 봄이 할아버지께 성큼 다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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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선에서 만난 사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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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술취한제갈량 2015.12.29 15:22:53
6
그것이 청춘인지 모르고....
어떻게 보면 개인의 치열했던삶들이 현제 를 일궈놓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베플
한송이 2015.12.29 17:45:35
4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해 주신분들...
그 든든함을 그 따뜻함을 그 사랑을....
이제 내가 주어야 할텐데...
못하고 있음이 부끄럼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주막집 2016.07.26 08:10:54
| 답변
0
감사합니다!
주막집 2016.07.26 08:10:46
| 답변
0
감사합니다!
이슬주 2016.07.04 19:31:52
| 답변
0
완료...
시에스타 2016.02.22 18:04:50
| 답변
0
출첵!
시에스타 2016.02.05 16:03:01
| 답변
0
출첵!
시에스타 2016.02.02 23:29:22
| 답변
0
출첵!!
얼쑤 2016.01.27 06: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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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과거의 진한 흔적은 인생의 애환을 공감하게 합니다.
시에스타 2016.01.18 17: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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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출첵~
시에스타 2016.01.12 16:28:06
| 답변
0
출첵!
시에스타 2016.01.04 17:55:44
| 답변
0
출첵!!
뚱띵이 2016.01.04 10: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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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다행히 집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하다고 하는군요..
겨울 건강히 지내시고, 띠뜻한 봄이 어서 왔으면 좋겠네요..
시에스타 2016.01.03 21: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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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출첵!
마냥 2016.01.02 12: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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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탄..참 그때 그 시절이죠^^지금도 인데요^^고맙습니다..
강촌 2015.12.30 08: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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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신 분 들이네요
날살돌이 2015.12.30 00:24:19
| 답변
2
현재 우리나라산업의기반을 일구어주신분 후손 들은 기억 해야 합니다.
한송이 2015.12.29 17: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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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해 주신분들...
그 든든함을 그 따뜻함을 그 사랑을....
이제 내가 주어야 할텐데...
못하고 있음이 부끄럼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술취한제갈량 2015.12.29 15: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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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것이 청춘인지 모르고....
어떻게 보면 개인의 치열했던삶들이 현제 를 일궈놓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