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교양

[핵심교양] 장항선에서 만난 사람

작성자 교무처 작성일 2015.12.15. 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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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역. 푸를 청(靑), 곳 소(所). 말 그대로 푸른 그 역인 청소역은 뜨거운 햇살 정도 피할 수 있는 아담한 공간에 푸른 녹색 지붕이 고아한 정취를 풍기고 있는 곳이다. 현재 장항선의 역사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인 이곳 역시 여느 간이역처럼 80여 년의 역사를 뒤로 한 채 사라질 예정이다.

나는 청소역의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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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역에 도착한 우리를 가장 처음 반겨준 건 대걸레였다. 그 옆에 역무원 아저씨의 근무복 역시 아주 쨍한 햇살 탓에 마른 장작같이 빳빳하게 말라가고만 있는 것 같았다. 청소역 아니랄까 봐 빨래와 청소 도구가 함께 놓여 있는 모습이 괜스레 우스우면서도 정겨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그런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한 아저씨가 있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역무원도 아니신 것 같은데, 기차에서 내린 승객 같지도 않은데, 우리가 기차에서 내린 이후에도 청소역의 입구 앞에 계속 서성이며 서 계신 모습이 의아할 찰나, 아저씨께서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사진 찍으러 왔냐고 묻는 아저씨는 그렇게 우리에게 아저씨의 이야기를, 그리고 청소역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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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호 택시운전사

사진 찍으러 왔어?

네. 여기가 장항선 최초 역이라고 해서요. 역이 예쁘다고 해서 직접 보러 왔어요. 사람들 자주 와요?
글치. 다들 이따 만한 카메라 들고 여기 찍으러 오더라고.

그런데 여기 이용객이 하루에 20명도 안 된다면서요?
20명 안 될 때도 많혀. 이제 뭐 열루 다니나.

20명도 안 되는데 택시 타는 사람이 있어요?
에이, 그래도 꽤 돼. 내가 이 동네에서 30년 동안 다녔으니께 단골도 있고, 일부러 나 찾는 분들도 많으니까 쉴 수가 없어. 여기가 버스가 불편혀. 그런데 여기 마을 사람들 병원 가려면 시내로 나가야 하니까 그때 택시들을 많이 이용하지. 또 간단히 이 근처 대천이나 그런데 다녀올 때 기차로 다니니께 그때 이용하기도 하고.

여기서 일하시면서 자제분들도 모두 키우셨겠어요.
글치. 자식 둘이 있는데 모두 대학 졸업했고. 큰애는 취업했고 또 하나도 취업했다가 지금 회사 옮긴다고 다시 준비하고 있는가벼.

원래 여기 주민이신 거예요?
아니지. 난 원래 태안 출신이여. 그러다 대천으로 이사 왔는데 그 뒤로 내 택시 운행 구역이 여기가 된 거지. 매일같이 출근하는 거지. 벌써 30년이나 되야 버렸어.

우와! 이 역의 산 증인이시네요. (웃음)
(웃음) 원래는 여기 역명도 청소역도 아니었어. 진죽리에 있다고 해서 진죽역이라고 불렸는데 이름이 바뀐 거지.

청소는 그럼 무슨 뜻이에요?
여기가 보령시 청소면이여. 그래서 청소역인거여. 더 큰 지역을 포함하는 거지. 여기가 원래도 그리 큰 역이 아니었거든. 그래도 역무원도 꽤 있었는데 지금은 1명이 다 전담혀. 저기 봐봐, 여기는 그리고 발권도 이제 안혀. 여기서 차표 사려면 기차에 올라타서 사야 돼. 어느 샌가 이렇게 시간이 가버렸더라고.

그런데 여기 아까 없어진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역이 완전히 폐역이 되는 건가요?
그걸 난들 아나. (웃음) 그런데 장항선 직선화 사업 땜시 일단 없어지는 건 확실해진 거 같혀. 근데 이 역사 자체는 없애지는 않을 거 같아. 군에서 샀다고 들었는디? 뭐, 근대문화유산이란가 뭐란가 문화공간으로 꾸밀 건가 봐. 신 역사는 아직 언제 만들어질지는 모르는데 이 역 앞 건너 마을로 철로가 지난다고 하더라고. 뭐 언제 없어질지는 모르겠는데, 없어지기 전까지는 매일 나와야지.

아, 소식 들으셨을 때 착잡하셨을 것 같아요.
뭘 착잡혀. 다 사라지는 건데 뭘. 돈이 안 되니께. 늘 적자니께. 어떻게 운영을 하겠어. 청소역도 그 중 하나겄지.

(웃음) 그래도 30년간 매일같이 나오신 곳인데 안 서운하세요?
우리도 사라지고, 역도 사라지고 다 그런 것 아니겄어. 그런데 역이 사라진다고 해도 정말 없어지기 전날까지는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혀. 내가 어디를 가겠어. 지금도 일년에 연휴 며칠 빼고는 늘 나왔어, 30년 동안. 아직 실감이 나지도 않어. 없어진다는 게. 어쨌든 전생에 무슨 연이었는지는 몰라도 난 이 청소역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혀.

아저씨는 지난 30여 년의 세월이 어떻게 이렇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며 잠시 말끝을 흐리셨다. 아마 매일 같은 일상 속 너무나 당연시 여기던, 그렇게 무던히 지나가는 하루였을 텐데 생각지도 못한 우리들의 질문에 꽤 느리게, 지난 날을 거듭 돌이켜보시는 듯 했다. 느릿느릿 충청도 말투라 더욱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실 말이 30년이지 아직 3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보지도 못한 나에게 그 세월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같이, 그 하루하루가 모여 이뤄낸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저씨의 인생엔 청소역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이곳에서 택시 운전을 하시며 결혼도 하셨고, 아이를 낳았고, 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정을 나눈 그 세월 동안 청소역은 어쩌면 지금의 아저씨를 있게 해준 모태이지 않을까라는 거대한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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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을 이용하는 사람은 정말 10명이 채 될까, 말까? 그러나 우리와의 대화 중간 중간 아저씨를 찾는 전화는 끊임없이 울려왔다. 청소면 사람들을 역과 이어주고, 그 역에서 다시 청소면으로 이어주는 아저씨는 어느 누구보다도 바쁜 사람이기도 했다.
30여 년을 드나들었지만 청소역에서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찍어본 적 없다는 아저씨에게 사진 한 장을 찍어드려도 되겠냐고 요청했다. 무슨 사진이냐며 손사래를 치지만 그 손사래가 쑥쓰러움의 손사래라는 건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없는 이 공간 안에서 아저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쩜, 그 뒤에는 큰 창으로 뜨거운 여름 햇살이 쏟아졌다. 아직은 영글지 못한 포도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그 자리에서 청소역 여름의 한 장면은 아저씨와 함께 하나의 그림으로 이렇게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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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선에서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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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쑤 2017.06.11 08: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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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옛날의 기차는 그 시절의 정취가 있었지요.
눈오는밤 2015.12.17 09: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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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기차역은 왠지모를 정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죠 좋습니다.
주막집 2015.12.16 17: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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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하루하루가 더디 지나갈지는 모르겠지만 지나고보면 휭하니 지나가는게 우리네 삶이지요. 저도 그런 나이가 되어가니 해 놓은건 없고....시대가 야속합니다. ㅎㅎ
술취한제갈량 2015.12.16 11: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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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세대가 가고 또 다른 세대가.....
눈에서 그리고 기억에서 점점 사라저 가는 것일겁니다.
남는 이들이 기억하는 동안 추억할것이고 아쉬워할 것이겠지만요
한송이 2015.12.16 09: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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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역...
오래 되서 정겨운것 편한것 웬지 내거라는 느낌
그런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는 요즘 세상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뚱띵이 2015.12.16 08: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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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도 사라지고, 역도 사라지고..
새삼..모든 것들은 원래 사라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촌 2015.12.16 07: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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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묵묵히 자리를 지켜 주시는 님께 감사요
날살돌이 2015.12.16 0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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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여행은 좋은것이며 떠너보고싶다.